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은 전남 영광군 길룡리 출생으로 박공우 성도는 그의 당숙(5촌)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상제님 어천 후 당시 원평에 살던 박공우 성도로부터 상제님의 신성하심을 많이 전해 듣고 태모님의 대흥리 도장 시절부터 상제님을 돈독하게 신앙하고 금산사 미륵전을 오가며 참배하였다.
그는 대흥리 도장 시절에 신앙한 지방 조직의 조직원이었고, 그 후 보천교 간부 임경호의 12임 중의 한 사람이었다.(이강오).
1915년 통사동 영모재에서 박공우, 김경학 등 20여 명이 모여 도통 공부를 할 때 당숙인 박공우 성도에게 간절히 청하여 그 자리에 참석하였으나 뜻밖에 김광찬의 광기로 인하여 성도들이 모두 흩어져 돌아가고 박중빈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4월 박중빈은 제자들과 함께 전라북도 이리(지금의 익산) 근교에서 ‘불법연구회’라는교명으로 교단을 열었다.
그 후 1928년 금산면 청도리 귀신사에서 수도하고 있던 박중빈을 만난 채경대(인도교 창교주)는 이 때 박중빈이 말하기를 “중노릇을 하기 위하여 불경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증산신성(甑山神聖)의 사업을 하기 위함입니다”(『범증산교사』445)라고 하였다.
1943년 6월 박중빈이 죽자, 송규(宋奎) 종법사가 그 뒤를 이었으며, 1948년에 교단 명칭을 불법연구회에서 원불교로 변경하였다.
오늘날 원불교의 교리를 살펴보면 용어만 다를 뿐이지 상제님 진리의 핵심인 개벽, 원시반본, 상생의 진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원불교라는 교명에서 보듯이 불교로 완전히 변색되어 버렸다. ‘우리 교법도 원래는 상제님 가르침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기회를 영원히 놓쳐 버린 것이다.
[박중빈의 상제님 신앙과 도통 공부]
성도들이 영모재에서 도통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후 박중빈(朴重彬)도 그 자리에 참석하거늘 중빈은 일찍이 태인과 정읍 등지를 돌아다니며 엿장수 생활을 하다가 당숙(堂叔)인 박공우로부터 상제님의 말씀을 여러 차례 전해 듣고태모님의 대흥리 도장 시절부터 상제님을 돈독하게 신앙하고 금산사 미륵전을 오가며 참배하니라.
이 때 중빈이 문득 교단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통 공부를 하기로 작정하고 방법을 찾던 중 하루는 '상제님을 모시던 성도 몇 사람이 통사동 재실에 모여 수도 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공우에게 간절히 청하여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더라. 그러나 뜻밖에 광찬의 광기로 인하여 성도들이 모두 흩어져 돌아가매 중빈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니라. [도전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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