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교4 보천교 성쇠기-2 소화 11년 6월 12일 조선중앙일보 보천교 성쇠기 훔치훔치 주문에 무지한 대중이 매혹 "신화선경"에 도달한다 확신 초대교조는 강증산(2)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니치야도래훔니함니사바아 신화일심, 인의상생, 거병해원, 후천선경의 네 개의 요법을 들고 『훔치훔치』에 주문을 행위좌와에 독송만 하면 병 앓는자는 쾌유해지고 무병한 자는 더욱 강건해지고 비를 원하면 비가 내리고 무엇이든지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강증산을 신인이라고 믿고서 그의 옆에 쭈구리고 혹은 엎대어 훔치훔치라는 흉칙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자가 점점 늘어갔다. 때는 바야흐로 이조말엽 기독교를 들고 자본주의 국각의 선구자로 이 당에 침입한 천주교 선교사의 포교가 성행하고 한편에는 고부의 풍운아 전봉준이가 동학의 도당을 규합하여 민란을 일으키어 패.. 2020. 9. 9. 보천교 독립자금 발각 무죄판결 매일신보 1922(임술)년 5월 초 8일 교도 60만 모집의 구실로 돈을 걷은 사건은 무죄로 검사공소. 전북 금제군 만경면 대동리 김홍규(53) 충남 보령군 주산면 창암리 이용하(82)동 석천군 비인면 구복리 김혁중(53) 전북 금제군 만경면 장산리 최두홍(44) 충남 공주군 목동면 달산리 강태규(72)동 논산군 노성면 호암리 목원익(44) 등 여섯 명은 조선의 국권회복을 목적하고 대정 3년이래로 태을교라는 종교에 유사한 단체에 가입하고 교도 다수와 결속하여 독립기성을 목적한 음모단을 조직한 후 포교선전을 이용하여 표면으로는 단순한 종교비슷하나 실상은 동교 ○○강증산을 옥황상제로 존숭하고 그외에게는 제사할 비용이라하며 각처에서 치성금을 모집하되 누구든지 이 돈을 내면 만병이 소멸한다는 말과 또는 후일에 .. 2020. 9. 3. 교조 강증산의 유골쟁탈 소화 4(1929)년 3월26일 중외일보 교조 강증산의 유골쟁탈 차경석에 선공소중 보천교의 주내막 한동안 세인의 이목을 속이여가면서 교리를 전하던 보천교(속칭 훔치교)신도 근전 조선 각지를 동하여 일백만명이라는 많은 수를 가지고도 가장 [수수격]기와 같은 종교단체로서 제1세 교주로는 강증산(명 일순)이 되였었다가 그는 명치 40년에 이르러 황천길을 밟게되였으로 하는수 없이 일반 교도는 교주의 시체를 전주 목곡산에 다 매장한 후 그의 아내 정치순이 가무덤을 관리하게 되였던 바 증산의 수제자로 있는 차경석은 스스로 그 후를 이어 교주가 된 후 1세 교주 증산의 시체를 대정 12(1923)년 3월에 발굴하여 다른 곳에다 매장을 한 후에 자기가 관리하게 되여 내려오던 중 이를 알게된 반대파 교도들은 전북 정읍군.. 2020. 8. 28. 보천교 성쇠기-1 등극설도 일장춘몽 정자문의 기치무색 자칭 천자 차경석 일거후에 최후의 적종은 울린다. 둔갑장신의 술법과 호풍환우의 요술을 가지고 태산도 능히 한주먹으로 뒤흔든다는 소문을 바람에 띄운채 수만명 교도와 언덕위에 그림자 외로운 색낡은 정자문의 깃발을 진세에 남기고 정체미상의 1대 풍운아 『자칭천자』 차경석이가 영원히 저 나라로 가버린 지난 4월 30일이 보천교로 하야금 금후의 조선『사파』와 인연을 끊게하는 첫 날이었다. 한때에는 (갑자 등극설)을 세상에 퍼처놓아 황당무계한 농설로 세인을 속이어 수 십만금을 헌납케하고 사상 운동을 빙자하야 정치적 색채를 가미시켜 비판 능력과 사고력이 마비된 백성들을 중합하야 수 백 만의 교도를 호언하든 것도 옛날 『갑자등극』이 허설로 돌아가고 과학적인 교양이 세간에 보급됨을 따.. 2020. 8. 2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