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11년 6월 12일 조선중앙일보
보천교 성쇠기
훔치훔치 주문에
무지한 대중이 매혹
"신화선경"에 도달한다 확신
초대교조는 강증산(2)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니치야도래훔니함니사바아
신화일심, 인의상생, 거병해원, 후천선경의 네 개의 요법을 들고 『훔치훔치』에 주문을 행위좌와에 독송만 하면 병 앓는자는 쾌유해지고 무병한 자는 더욱 강건해지고 비를 원하면 비가 내리고 무엇이든지 소원이 성취된다고 하여 강증산을 신인이라고 믿고서 그의 옆에 쭈구리고 혹은 엎대어 훔치훔치라는 흉칙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자가 점점 늘어갔다.
때는 바야흐로 이조말엽 기독교를 들고 자본주의 국각의 선구자로 이 당에 침입한 천주교 선교사의 포교가 성행하고 한편에는 고부의 풍운아 전봉준이가 동학의 도당을 규합하여 민란을 일으키어 패멸한 뒤 민심은 흉흉하여 안정을 잃고 위구와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이때야말로 훔치훔치의 주문의 매력이 몽매한 농민의 가슴에 숨여들어 그들의 심장을 붙들기에 가장 좋은 기회라 강증산의 행동이 의아하고 그의 부르는 주문이 해득키 힘들고 괴이할수록 이를 기적으로 믿는 우매한 민중은 더욱 늘어나갔다.
그리하여 생활의 목표를 상실하고 세상을 뒤집는 새로운 정세의 원동력을 알 수 없는 다대수의 민중은 훔치훔치의 주문에 마음을 붙여 한 세상의 고생을 안심에서 구하여 보라고 하였든 것이다.
마음대로 병을 고치고 먹지 않아도 살수 있게 만들고 비를 부르면 비가 내리고 바람을 찾으면 바람이 불어오는데 이런 신을 위하고 이런 신을 모시기에 재물이 뭣이며 한 몸이 뭣이랴.
신인 강증산을 위하여는 하루 아침에 기만금을 얻어 헐벗은 거지가 되어도 이우의 만족은 없다고 증산의 포교소에 모여든자가 삽시간에 수백명!
그중에서 김형렬 차경석 안내성 김인두 장기동의 다섯명을 뽑아서 천명을 얻었다고 칭하고 한정없는 신력이 우리의 마음하나로 좌우된다고 호언하였으나 명치 42년에 드디더 자칭 신인 강증산은 39세를 일기로 하루아침 풀우의 이슬로 사라져버렸다.
훔치의 주문만 외우면 신화선경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하든 교주 자신이 39세로 요절하여 사라지매 세상은 이곳에도 무상하다고 그를 귀신으로 믿든 신앙은 동요되고 모였든 교도는 뿔뿔히 흩어졌다.
그러자 김형렬 차경석 등은 모다가 각 1파를 창설하여 분열을 거쳐 드디더 10수 교파의 병립을 보게된것이다. 차경석 역시 강일순의 주검에서 수많은 의념을 풀게되어 초십오뇌(焦心懊惱)에 침식을 잊기 수십일
드디어 정적한 산사에서 사색에 정진하여 개오한바 있다고 세상에 공포하고 대정10년 9월24일 덕유산 록황석산에 교명 고천제를 거행하고 교명을 『교화』라 한뒤 그이듬해 당국의 양해를 얻어 『보천교』로 개칭하고 한개의 종교를 창설함에 이른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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