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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통관

교조 강증산의 유골쟁탈

by 빛꽃인간 2020. 8. 28.

 

 

소화 4(1929)년 3월26일 중외일보

교조 강증산의 유골쟁탈
차경석에 선공소중
보천교의 주내막

한동안 세인의 이목을 속이여가면서 교리를 전하던 보천교(속칭 훔치교)신도 근전 조선 각지를 동하여 일백만명이라는 많은 수를 가지고도 가장 [수수격]기와 같은 종교단체로서 제1세 교주로는 강증산(명 일순)이 되였었다가 그는 명치 40년에 이르러 황천길을 밟게되였으로 하는수 없이 일반 교도는 교주의 시체를 전주 목곡산에 다 매장한 후 그의 아내 정치순이 가무덤을 관리하게 되였던 바

 

증산의 수제자로 있는 차경석은 스스로 그 후를 이어 교주가 된 후 1세 교주 증산의 시체를 대정 12(1923)년 3월에 발굴하여 다른 곳에다 매장을 한 후에 자기가 관리하게 되여 내려오던 중

 

이를 알게된 반대파 교도들은 전북 정읍군 영원면 덕선리 14번리에 있는 교주 증산의 아내인 정치순을 충동시켜 [남편의 유골을 돌려달라고] 전주 지방법원에다 석전 변호사를 대리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었던바

 

결국 정치순이 가승소하게 되자 차경석 일파는 교주의 시체를 빼앗겨서는 아니된다하며 ○○을 마지아니하고 대구 복심 법원에 공소까지 제기하게되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발포되게되자

 

일반 사회에서는 [수수격]기의 교주의 유골이 장차 어느편 손에 들어가게 될는지 일반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매우 주목하고 있는 중이라더라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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