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 4(1929)년 3월26일 중외일보
교조 강증산의 유골쟁탈
차경석에 선공소중
보천교의 주내막
한동안 세인의 이목을 속이여가면서 교리를 전하던 보천교(속칭 훔치교)신도 근전 조선 각지를 동하여 일백만명이라는 많은 수를 가지고도 가장 [수수격]기와 같은 종교단체로서 제1세 교주로는 강증산(명 일순)이 되였었다가 그는 명치 40년에 이르러 황천길을 밟게되였으로 하는수 없이 일반 교도는 교주의 시체를 전주 목곡산에 다 매장한 후 그의 아내 정치순이 가무덤을 관리하게 되였던 바
증산의 수제자로 있는 차경석은 스스로 그 후를 이어 교주가 된 후 1세 교주 증산의 시체를 대정 12(1923)년 3월에 발굴하여 다른 곳에다 매장을 한 후에 자기가 관리하게 되여 내려오던 중
이를 알게된 반대파 교도들은 전북 정읍군 영원면 덕선리 14번리에 있는 교주 증산의 아내인 정치순을 충동시켜 [남편의 유골을 돌려달라고] 전주 지방법원에다 석전 변호사를 대리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였었던바
결국 정치순이 가승소하게 되자 차경석 일파는 교주의 시체를 빼앗겨서는 아니된다하며 ○○을 마지아니하고 대구 복심 법원에 공소까지 제기하게되였다는 사실이 세상에 발포되게되자
일반 사회에서는 [수수격]기의 교주의 유골이 장차 어느편 손에 들어가게 될는지 일반은 많은 흥미를 가지고 매우 주목하고 있는 중이라더라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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