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화 11(1936)년 6월 11일 조선중앙일보>
<보천교의 성쇠기>
등극설도 일장춘몽
정자문의 기치무색
자칭 천자 차경석 일거후에
최후의 적종은 울린다.
둔갑장신의 술법과 호풍환우의 요술을 가지고 태산도 능히 한주먹으로 뒤흔든다는 소문을 바람에 띄운채 수만명 교도와 언덕위에 그림자 외로운 색낡은 정자문의 깃발을 진세에 남기고 정체미상의 1대 풍운아 『자칭천자』 차경석이가 영원히 저 나라로 가버린 지난 4월 30일이 보천교로 하야금 금후의 조선『사파』와 인연을 끊게하는 첫 날이었다.
한때에는 (갑자 등극설)을 세상에 퍼처놓아 황당무계한 농설로 세인을 속이어 수 십만금을 헌납케하고 사상 운동을 빙자하야 정치적 색채를 가미시켜 비판 능력과 사고력이 마비된 백성들을 중합하야 수 백 만의 교도를 호언하든 것도 옛날 『갑자등극』이 허설로 돌아가고 과학적인 교양이 세간에 보급됨을 따라 전라북도 정읍의 대흥리 말리성 곽 속에 들어있는 고래같은 대궐은 고색창연하야 점점 지붕을 받들고 있는 대들보는 썩어가기 시작하였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교도가 전 조선에 5만명 비록 "천자"는 하늘로 올라갔으나 그의 교를 이어 남아있는 교도의 힘을 이용할려는 자칭 교주의 알력은 심하여 다시 한번 옛날의 흥성을 꾀하여 보려할즈음 드디어 경찰당국은 이들에게 철퇴를 내리운 것이다.
이제서야 훔치교는 안개 속에서 그의 정체를 세간에 폭로하게 되었고 증산 강일순이 명치 34년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서 정진기념 7일간 대우가 노호하고 오룡이 허풍하든때 "천지의 대도를 오득한지 35년 그의 죽은 뒤 영생불사의 신으로 그를 모시고 선도교와 보화교를 거쳐 대정 11년 보천교를 차경석이가 시작한지 10여년 드디어 훔치교는 사교로서의 재단앞에 심판을 받을 운명 앞에 서게 되엇다. 이미 기보한 바와 같이 10일 새벽 전북 경찰대 40명의 출동으로 보천교의 본부는 총수색을 당하고 전일본적으로 단행한 대본교 해산에서 발단한 사교취체의 철봉은 드디어 보천교의 두상을 후려치게 되어 훔치 계통의 종교단체는 보천교뿐만 아니라 무극대도교 증산교 미륵불교 동화교 태을교 대세교 원군교 용화교 선도교 등 전부 추상같은 제재에서 불운의 운명을 울게 되었다.
지금 이날을 맞아 요원한 역사를 가진 강일순 차경석으로 비롯한 "훔치"보천교의 걸어온 길을 성쇠에 따라 더듬어보기로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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